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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8. 8.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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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초록레몬



#아래의 글은 필자의 커플링 취향과는 관계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오직 선물을 위해 쓴 글이며, 디 이외의 분들의 수정 원치 않습니다

#뀨






[백민]그 푸르렀던 날들



"하나 더!"


으윽..백현이 검지 손가락에서 빛무리를 뾰족하게 쏘아내며 제 앞의 고무인형을 관통시키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더는, 더는 못하겠다. 백현은 거친 숨을 뱉어내며 눈을 스륵 감았다. 18살, 인간의 몸의 강도와 똑같이 설계된 고무인형들을 하루에만 100개이상 부서뜨리고,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만들고, 또 그를 공격에서 보호하는 일들을 하기엔 어리다면 어릴나이. 기관에서 돌아다니는, 열살, 아니면 그보다 대여섯살 정도 많은 아이들을 본다면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 

보통 만 19세가 되고나서야 국가작전에 투입되는데 특별히 파괴력이 있거나 희소성이 있는 센티넬을 가지고 있는 센티넬의 경우 국가의 동의 하에 최소 15세부터 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백현은 빛, 리커버리, 이그노얼. 세 개의 센티넬을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센티넬이었다. 그리고 이그노얼의 센티넬로 인해 필수 검사시기인 열여덟살이 되어서야 국가기관으로 끌려온, 선천적으로 제 센티넬을 다루는데 뛰어난 아이. 백현은 기관으로 들어오자마자부터 괴물이라고 불렸다.


-

"김민석!"


백현이 팔을 내저으며 저를 보고 걸어오는 민석의 이름을 불렀다. 눈꼬리를 접어가면서까지 활짝 웃으면서 팔을 휘휘 흔들며 저 부르는 모습에 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백현 앞에 섰다.


"뭐 먹지?"


민석이 주머니에 있는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백현에게 물었다. 원래도 몸이 차웠고, 그래서 조금만 추워져도 온 몸이 언 것처럼 차가워지는 민석은 어렸을적부터 온갖 감기란 감기는 달고 살았었다. 민석에게 가을로 접어듦에따라 온 몸에 붙이는 핫팩은 익숙한 것이었고, 거기다 외투 주머니엔 항상 커다란 핫팩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그래야 그나마 감기가 약하게 드니까. 하지만 민석은 제 체질에 대해 뭐라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다. 백현이 투정부리듯 너 몸 차가워지는거 진짜 싫다- 했을 적에도 그저 괜찮은데.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니가 먹고 싶은거 먹자."


백현이 민석의 발끝을 지그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몽글거리는 입김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딱히 없는데."


민석이 그 한마디를 하곤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런 침묵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민석은 원래도 말이 한참 없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탓에 몇년이상 알고지낸 사람이 아니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주위에 항상 사람들이 차고넘친다는 건, 그만큼 매력이 있어서겠지. 말많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낯을 민석못지않게 가리는 백현은 항상 제가 다가가는 방식으로만 친구를 사귀었기에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민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음, 그럼 떡볶이 먹자. 매운..건 니가 못먹네. 그러면 그냥 맛있는 떡볶이집으로!"


백현이 곰곰이 생각하다 떡볶이를 외쳤다. 민석이 옅게 웃으며 백현의 옆으로 걸었다. 백현이 말없이 민석을 바라보다 민석의 워머를 코까지 끌어올려줬다. 민석이 그런 백현을 빤히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꽤나 추운 겨울이었다.



-


"변백현. 진짜 가이딩 안 받아?"


"어."


"어? 어가 뭐냐 어가. 이래뵈도 선생님 소리 듣고 다니거든?"


"그게 왜."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너 가이딩 안 받을거야? 약은 내성생긴다."


"뭘. 1년밖에 안 됐는데."


"1년이면 길지! 작전하다 그냥 그대로 폭주해서 뒤지고싶냐?"


"...됐어. 죽으라면 죽지 뭐."


"하, 너 진짜."


"니 몸이나 간수 잘 해, 김종대."


"김종대애? 진짜 너 막나간다?"


"어쩌라고, 나 쉬게 약 놔주고 가. 힘들어."


"어이고. 그렇게 힘든 놈이 가이딩도 안받아, 훈련은 얼마나 또 무지막지하게 해. 한 번 폭주해야지 가이드 붙이겠다, 엉?"


쏟아지는 잔소리에 백현이 몸을 힘겹게 일으키고 종대 앞으로 제 얼굴을 훅 붙였다.


"시끄러. 나 폭주 안해. 알잖아?"


약이나 놔주고 가.


백현이 침대로 털썩 쓰러지며 말을 내뱉었다. SSS급 센티넬 변백현의 전담의사는 거의 팀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10달 전, 제 방으로 들이닥치는 열댓명의, 펄럭이는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본 직후로, 다 필요없다고 한바탕 난리를 친 백현 덕에 기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백현의 검사를 맡았던 종대가 전담의사로 마크되었다. 그나마 낯이 익은 종대가 편했으리라. 

종대는 순식간에 잠이 든 백현을 보곤 한숨을 쉬었다.


"내가 못 산다."


나도 네가 가이드 같은 거, 사실 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민석이 가이드라는 걸 알아차린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즈음 제 센티넬을 자각하고 조금씩 다루는 데 신경을 쓰던 백현은 제게 이그노얼을 걸어두느라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도착해 민석을 보자마자, 시원해지고 온 몸의 근육이 하나하나 이완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 김민석. 가이드구나. 백현이 허탈하게 웃고는 제게 걸던 이그노얼을 민석에게로 옮겼다. 넌 평범하게 살아야해.


"변백현."


"응?"


"너 요새 고민있어?"


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렇게 말 없는 김민석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초췌한건가. 하며 백현이 제 앞에 서있는 민석을 올려다봤다.


"으음? 아니. 그냐앙- 좀 피곤해서."


"뭘 하길래 그렇게 피곤해하냐. 하여간 일찍 자라니까."


말 안듣네. 그 말을 하고서 민석이 습관처럼 제 입술을 물었다. 백현이 민석의 생소한 모습을 보고 힘없이 웃었다. 낯은 가리지만 정이 많아 원래 한번 마음 준 상대에겐 티는 안내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민석의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겐 일절 보이지 않는 모습을 제 앞에서만 보이니까. 자꾸 헷갈리게 한다. 김민석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 날, 내가 너를 두고 떠나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니가 나를 그냥 담담히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울고불고 안 된다며 나를 잡고 놔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뒤섞였다. 수업 종이 쳤고, 백현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엎드렸다.



-

백현은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 백현은 익숙하게 몸을 씻고 머리를 털며 쇼파에 앉았다. 욕실에서 나올때부터 느껴졌던 이질적인 공기의 정체는 김종대였나. 옆으로 길게 놓인 쇼파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종대가 쇼파에 앉는 백현을 보고 웃으며 반겼다.


"또 왜. 그리고 내가 불쑥불쑥 찾아오지 말랬잖아."


"변백현아."


"또 가이드 붙이란 소리 하면 너죽고 나 죽는거야."


백현이 살벌한 눈을 하고서 손끝으로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미친. 저거 맞으면 죽는다. 종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보류다.


"아, 아니야아- 오늘 훈련일정하고 보여주려구 왔지."


"매일 똑같은데 뭘 보여줘. 곧 간다고 전해."


"...그래."


종대가 서류철을 들고 일어나고, 백현은 일어나 옷장문을 열었다.


"이젠 좀 형이라고라도 불러라!"


쾅.

문이 거세게 닫히고, 종대가 쌩하니 뛰어갔다. 백현은 종대의 마지막 말에 피식 웃으며 와이셔츠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뭐, 형 같아야 형이라고 부르든가 하지."


넥타이까지 말끔히 맨 백현이 구두를 신고 문 밖을 나섰다. 처음엔 아침식사가 일정에 잡혀있길래 뭐지 하며 잠옷차림 그대로 갔다가 모두의 경악을 가득담은 시선을 받아야 했었다. 그 많은 시선들이란. 다시 한 번 그날의 풍경을 곱씹은 백현은 으, 하며 고개를 털었다. 생각만 해도 입맛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정장을 갖춰 입고서 밥을 먹으러 가는 이 순간도 가감없이 말하자면 역겨웠다.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

민석이었다.

체육시간이었나,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있는 민석을 멍하니 바라보는 백현의 모습이 익숙했던 그 낯익은 운동장에서의 시간은. 늦봄의 햇살은 이제 여름의 그것과 비슷해져 갔고 그에 따라 백현의 마음도, 민석의 마음도 온도를 찾아갔다.


"김민석! 축구 안 해?"


민석은 백현의 목소리에 단상 위에 앉아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어릴 적 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민석을 따라 함께 축구를 해온 지 햇수로 거의 8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요 근래에 자주 피곤함을 호소하며 제가 그리도 좋아하던 축구도 마다하고 단상 위에 앉아 다리를 데롱거리는 민석을 보니 백현이 괜히 착잡했다. 분명 무의식적으로 가이딩을 제게 펼쳐 그런 것이리라. 물론 민석에게 열심히 이그노얼을 걸고 있는 저 자신도 힘들었지만, 조절이 안 되는 가이딩은 그 자체만으로 온 몸의 힘을 쫙쫙 빨아간다. 민석아, 넌 평범하게 살아줘.


-

"새로 들어 온 가이드가 있어."


"가이딩, 안, 받을, 거라고."


아침 식사 후 몇 시간 동안의 사격훈련을 마치고 잠시 쉬고있던 백현에게로 종대가 와 말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심각한 느낌을 받은 백현은 받쳐 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려 애쓰며 부러 음절을 끊어 발음했다.


"변백현."


"...썅."


"트리플 S급 센티넬에 가장 적합한 가이드가 어떤 가이든줄 알아?"


"...더블S에 트리플A급."


"잘 아네."


"김종대. 아니지?"


"김민석, 왔다."


백현의 세상이 부서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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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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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준]뽀뽀해줘

조각 2017. 2. 13. 00:13




[슈준]뽀뽀해줘



w.초록레몬




"뽀뽀해줘!"


민석은 요 근래 들어 제게 뽀뽀를 요구하는 준면을 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안아줘, 손 잡아줘로 시작한 준면의 스킨십 요구사항은 날로날로 늘어 이제는 뽀뽀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손 잡는 것도 가만히 잡고 있는게 아니라 조물딱 조물딱 어찌 그렇게도 만져대는지. 민석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안 돼."


"왜 안 돼! 손도 안 잡아주고 안아주지도 않고 안지도 못하게 하구 뽀뽀도 안 된다 그러고!"


"안되니까 안 돼."


꽤 단호한 거절에 준면이 시무룩해져서 자리로 돌아갔다. 스킨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민석을 알고는 있었지만, 손 잡는것도 요새는 안 돼, 안는건 원래도 안 됐고 더더욱 안 돼, 거기다 야심차게 준비한 '뽀뽀해줘' 까지 거절당해버렸다. 뽀뽀받고싶어. 애기도 아니고 땡깡부리는것도 아니고 그냥 뽀뽀받고싶단 말이야. 준면의 입이 댓발 나온 걸 보던 민석이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제가 스킨십을 좋아하지 않는 건 맞다. 누가 먼저 와서 안는다거나 팔짱을 낀다거나 하는, 스킨십을 '당하는' 쪽은 정말 좋아하지 않았으며, 제 마음 내킬 때 먼저 다가가 어깨동무를 한다거나 뒤에서 끌어안는다거나 하는, 제가 하는 스킨십은 그나마 하는 편이었다. 처음 준면이 제게 손을 잡자는 스킨십을 요구했을때, 아무생각없이 그래, 라고 했던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냥 가만히 잡고있는게 아니라 어찌나 손 하나가지고 잘 놀던지. 물 만난 고기마냥 제 손을 붙들고 이리저리 가지고 놀던 준면을 가만히 바라보던 민석은 갑자기 피어오르는 더운 감각에 손을 슬그머니 뺐더랬다. 그리고 그때부터였지. 준면과의 스킨십에 더 벽을 두기시작한 때는.


"민석아!"


"왜."


"안아줘!"


"안 돼."


민석의 쌉싸름한 향을 좋아하는 준면은 민석에게 툭하면 안아달라고 졸랐다. 민석이 그를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리고 민석은 웃기게도 그렇게 끈질기게 제게 스킨십을 요구하는 준면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고, 준면도 민석이 거절하면 힝힝거리며 포기하곤 자리에 앉아 담요에 푹 파묻혀선 고롱거리며 잠을 잤다.


그러니까, 민석이 제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된 건 시간이 조금 지난 후였다. 준면이 스킨십을 좋아하고 또 애교도 많아 여러 사람에게 치대는 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손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나 안아달라 요구하는 건 평소에도 준면이 제 반 친구들에게 자주 요구하는 것이었고, 뽀뽀해줘-는 민석만의 전유물이었으며, 쓰다듬어줘-는 요즘 준면이 많이 요구하고 다니는 통에 이젠 준면이 머리만 들이밀면 모두들 준면의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어주기까지 이르렀다.

그러다가 민석이 교무실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가 반에 오는 길에 익숙한 뒷통수가 큰 키를 가진 남자애와 복도 끝으로 가고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순간 스치는 이상한 생각에 그 둘을 졸졸 따라갔는데, 뒤이어 준면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닌데에, 나 아무한테나 그러는 거 아니야-"


"온갖 애들한테 꼬리치고 다니는거면 맞잖아."


"아, 아니야...아닌데.."


"그러니까 키스 한 번만 해."


"싫어..싫어!"


준면이 빽 소리를 치며 울먹거렸다. 부들거리며 상황을 보던 민석이 이름도 모를 남자애가 준면의 허리를 움켜잡는 걸 보고 앞 뒤 잴것없이 달려들었다. 퍽, 소리를 내며 아이가 널부러지고, 준면은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민석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밍서가.."


"너는, 후, 쓰...미쳤다고 이런 앨 따라가?"


화가 치미는 와중에도 민석은 준면이 욕을 쓰는 걸 싫어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서 인내의 인내를 거듭하며 욕을 목구멍 너머로 삼켜냈다. 민석이 제 앞에서 화를 내는 건 처음이라 준면이 더욱 울먹였다. 무서운데, 민석이가 화를 내..


"마음에 안 들었어. 니가 쉽게 여기저기 애교부리고 다니는 것도, 친한 애들 보면 붙어서 안아달라고 하는 것도."


"...왜애..?"


민석이 그 질문에 잠시동안 멍했다. 왜지? 왜 나는 니가 다른 애들이랑 붙어있는게 싫었을까. 왜 내게 스킨십을 요구하면 괜히 뺐을까. 그러고 보면 답은 하나였다. 김준면이 좋아서. 김민석은 김준면을 좋아하니까. 빠른 시간에 감정정리를 마친 민석이 무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감정을 두고두고 가슴에 담아두는 편도 아니었고, 좋아하는 걸 깨달은 이상 굳이 숨길 이유도 없었다. 조금 전 민석에게 한 대를 맞은 그 멍청한 놈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랑 스킨십 하는거 보기 싫으니까."


"어?"


"너 좋아하나봐. 좋아해."


"아니, 그..민석아?"


"이제 너도 내가 좋아하는거 아니까 너 다른 애들이랑 붙어있고 같이 노는거 질투 할거야."


"....아..."


"하나하나 전부 잔소리 하고 귀찮게 할 거니까."


"...."


"그리고 이제 스킨십 다 할거야. 그러니까 하고 싶으면 나한테 해달라고 해. 엄한데다가 치대지 말고."


"..응."


"할말."


"응?"


"할말 없어?"


"나도 너 좋아!"


"뭐?"


"그러니까 너도 나한테만 뽀뽀해주고 안아주고 해야해."


준면이 민석을 끌어안고서 볼을 부비적거렸다. 민석이 멍한 표정으로 준면을 바라봤다. 방금 준면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준면이 민석을 안은 채로 귀에 속삭였다.


"야한 스킨십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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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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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준] 울어라, 캔디야


w.초록레몬


관계의 우연성



다른날과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날 법한 날이었다. 민석은 D-3 구역 인원의 부재로 제 구역이 아닌 곳에서 들어온 의뢰를 처리하러 가야했고, 철저히 계획되어진 삶을 사는데에 익숙한 민석은 조금의 불편함을 느낀 채로 연락받은 장소로 향했다. 유난히 달이 둥글었고, 본래 은빛을 띄던 달빛이 오늘따라 붉은 끼가 돌았다. 다들 홍월(紅月)이 불길하다 하지만, 차가운 은빛보다 뜨거운 붉은빛을 더 선호하는 민석이라 조금 전까지의 이질감이 왠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이제껏 몇 년간 설렘으로 다가올 만큼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정말 오늘은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몸 안에 집중되는 감각이 달랐다. 조금 더 뜨겁고, 울렁이는 느낌.


일은 특별히 위험하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윗사람들의 지시에 맞게 기계적으로 빠르고 신속한 처리를 할 뿐이었다. 민석은 좁은 골목에 그 사람을 내몰고 소음기의 연결상태를 확인한 후 그대로 망설임 없이 남자를 향해 총을 쏘았다. 우유팩이 땅이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한순간 나고, 남자가 쓰러졌다. 민석이 남자의 숨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어 위치를 전송했다. 여느 때와 같이 소매를 털고 발사되지 않게 총을 분리해 가방에 넣은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민석의 시야 귀퉁이에 들어차는 조그만 인영이 보였다. 꽤 가까운 거리였고, 뒤이어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당황스러운 듯 하지만 차갑게 굳은 하나의 시선, 두려운 듯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하나의 시선. 자세히 보니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맨 것이 아직 학생인 듯 했다. 책가방을 놓은 지 8년이 넘어갔고 이제는 발음조차 어색한 교복을 보니 괜히 민석의 마음이 이상해졌다. 저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모양새가 꽤나 당돌했다. 반짝거리는 순진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민석은 아이를 죽이지 않기로 마음먹고 본능적으로 가방 안에서 배회하던 손을 거뒀다. 


"아저씨."


민석은 자기를 부르는 말인가 싶어 고개를 그 쪽으로 향했다.


"나 이제 죽일거에요?"


완연히 소년의 빛깔을 띄는 미성이 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는데, 묘한 관심이 일었다. 민석이 본 모든 죽음은 처절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죽음을 눈으로 보고, 그 다음이 저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일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


민석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정말로 아이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벌써 죽였을테니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목격자도 죽이던데."


아이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민석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안 죽일 거니까.


"그럼 잘가요."


아이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는 책가방 끈을 쥐어잡고 뒤를 돌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민석은 멍하니 아이의 동그란 뒷모습을 바라봤다. 처음 만나보는 인간상에 마음 한켠이 이상스레 술렁거렸다. 이것도 며칠만 지나면 다 없어질테다. 하지만 이질적인 설렘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아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가벼이 넘길 것이 아닌듯 했다. 민석은 제 책가방을 꽉 쥐고있던 아이의 손가락 마디마디와 동그랗게 뜬 반짝이는 눈동자를 차례로 떠올렸다. 호기심 가등했던 그 아이의 눈빛이 그 다음으로 떠올랐다. 마음에 든다, 아이가. 또 보고싶을 정도로.


그 생각을 하고 민석은 제 생각에 제가 놀라 파득, 거리며 뉘어져 있던 몸을 바로 했다. 이제 한동안은 의뢰가 없을 것이었기에 그동안은 암묵적 휴가기간이었다. 그 시간엔 대다수의 요원들이 여행을 가거나 나름대로의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민석은 예외였다. 그는 이제껏 휴가가 주어진 이래로 제 집을 떠난 적이 없었으며, 그 누구의 놀러가자는 둥, 술 마시러 가자는 둥의 연락에 일체의 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 때문에 민석은 만인의 철벽남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아무튼 민석은 내심 이번의 휴가를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듯 했다.


"이사를 간다고?"


"예."


"그것도 이런 판잣집으로?"


민석은 인상을 찌푸리고서 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제 직속상사를 건조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남자의 눈썹이 순간 마음에 들지 않은다는 듯 움찔했다.


"이해할 수 없군. 자네라면 얼마든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텐데."


"괜찮습니다. 거기면 됩니다."


민석은 제 앞의 상사가 얼른 결재를 해주었으면 했지만 뭐가 문제인건지 남자는 한참동안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 거기 뭐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올린 서류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지."


남자가 제 턱을 한 번 슥 문질렀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말이야, 민석군."


"예."


"사람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가장 약해지지."


민석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괜히 이 바닥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몇년 간, 이 조직에 오고부터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는 민석에 곱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거처를 옮긴다는 민석의 결재서류를 보고서는 더욱더.


"명심하겠습니다."


"이사를 하는 것에 결재는 해 주겠지만 이 집은 안 돼. 이쪽 세계 뿐 아니라 저쪽 구역에도 저들만의 조직이 있어. 괜히 부딪혔다가 안 좋은 일 생기느니 차라리 접점을 없애는 게 낫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길 건너 오피스텔로 옮기도록 하지. 짐은?"


"제가 옮기겠습니다."


"가구는 넣어둘 테니 작은 것만 챙겨."


"예."


"그래, 나가봐."


민석은 남자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에서 나왔다. 조금 후 울리는 문자 소리에 폰을 보니 [1동 526호]라는 정확히 용건만을 보여주는 텍스트에 익숙하다는 듯 동호수를 기억하고 폰을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일쯤, 들어가면 되겠지. 두어 달 정도는 있어야겠다. 생각하며.


민석은 큰 가구만 배치를 부탁하고, 나머지 짐은 하나하나 제 손으로 정리했다. 규칙적인 것, 깔끔한 것, 조용한 것, 심플한 것 등 틀에 짜 맞춘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까지 있는 민석은 제 손길이 닿아야지만 속이 풀렸다. 다만 한 가지. 음식만은 예외였다. 거의 네 다섯시간 넘게 걸려 정리를 마친 민석은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닫고 밥을 먹으러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사하고서 먹는 음식이 있었는데..기억의 저편을 더듬던 민석이 결국 자장면을 떠올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장면. 안 먹은지 오래 됐다.


"어서오세요!"


딸랑이는 종소리와, 앞에 치렁치렁 달랑거리는 구슬달린 발을 젖히고 들어가자, 맑은 목소리가 손님을 반겼다. 민석은 그 목소리가 아이의 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픽 웃고는 제일 가까이에 있는 자리에 앉고서 주문을 했다. 자장면 한 개요.


"네- 자장면 한 개요!"


흠..다시 들어보니 더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민석은 창밖을 보며 테이블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우산에 굵게 떨어지는 빗소리 같았다. 복작복작한 작은 음식점 안에 내리는 굵은 빗소리. 답지 않게 민석은 '예쁜'소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에 더해 예쁜'것' 또한. 그리고 그 기준은 오롯이 주관적이었고. 민석은 모락모락 김을 퍼뜨리는, 반짝이는 짙은 고동색의 짜장면이 제 앞에 얹어질때까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 귓가에 들리는 말소리, 신발소리.


"자장면 한 그릇 나왔습니다...어? 그때 총 아저씨?"


"아..너."


민석이 멍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봤다. 말갛고 깨끗한 이목구비가 한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더불어 고운 목소리까지.


"여기서 보네요. 신기하다...어, 혹시 이사했어요? 아까 이삿짐 차 왔다가 나가는거 봤는데. 총 아저씨 이삿짐 차였나봐요?"


동그랗게 뜬 눈으로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뱉어내는게 보기 좋고, 듣기도 좋았다. 흰 목에 찍힌 멍 같이보이는 붉고 푸른 자욱이 눈에 거슬렸지만 학생이니까, 친구랑 싸웠겠더니 넘겼다. 두번, 그것도 첫만남은 무려 제가 사람을 죽일 때 만났던 건데 어디서 다쳤어, 하면 입을 꾹 다물 게 선했다.


"네? 아저씨?"


"아, 응. 이사왔어."


"히히..우리동네 맞은편, 맞죠?"


"응. 그러네."


"뭐야, 싱겁게."


아이가 입술을 쭉 내어물었다. 귀엽네, 많이. 민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어어, 총아저씨 웃었어."


아이가 그 모양을 보더니 제가 더 좋아 방싯거렸다. 초롬하게 단정한 얼굴이 사정없이 흩어지며 반짝거리는 듯 했다. 웃는것도, 귀엽네. 이쯤 되면 중증이라 생각하고 민석이 드디어 제 아래 놓인 자장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면아! 주문 받아야지!"


"헉, 맞다. 가요!"


아이의 이름은 '준면'이었다. 이름마저 마음에 든다. 한번더 만나면 성까지 물어봐아지. 민석이 조금 불어버린 자장면을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왠지 자주 이 집에 자장면을 먹으러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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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레몬

,

[오백]Moonlight

조각 2016. 8. 7. 19:49

w.초록레몬

 

 

 

눈꼬리가 쳐지고 입 모양도 뾰족한 것이 살짝만 건드려도 흐엥 하고 울음을 터뜨릴  모양새라 경수에게 백현의 첫 인상은 그닥 좋지 못했다.
워낙 깔끔한 걸 좋아하기도 했고,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는데, 백현은 첫날부터 딱 그 범주 안에서 놀고,먹고,뒹굴거렸다. 거기다 빵실하고 뽀얀 볼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그만큼 뽀얗고 말랑한 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같은 기숙사를 쓰고 있음에도 둘은 2주가 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경수의 성격상 이런 침묵은 익숙했고, 또 편했기 때문에 백현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귀찮은 시끄러움보다는 어색한 침묵을 선호했으니까.

하지만 백현의 상태는 그와 반대였다. 제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말을 걸어보자는 스타일이라 지금 백현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거는 백현이었지만, 뭔지 모를 경수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 비슷한 것이 자꾸만 백현의 입에 급제동을 걸었다.

 

정작 둘이 일어나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보는 시간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6시에 일어나 씻고 조식을 먹으러 가는 경수와, 7시에 비척대며 일어나 머리만 감고 교실로 뛰어가는 백현. 거기다 교실도 3반과 15반. 2층과 4층. 기숙사에 돌아오면 12시가 다 되어가고, 그때쯤 되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더라도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니곤 했기 때문에 그때의 한 시간마저 침묵으로 보내곤 했다.-백현은 그마저도 어색해하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년간은 같은 방을 쓸건데, 정말 이러다가 1년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백현이 오소소 돋아난 소름에 몸을 떨었다. 으..아무 말도 안하다니. 그런 건 백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백현이 경수에게 말을 걸자 결심한 건  4월말이 다 되어서였다. 그러니까, 중간고사를 막 친 마지막 날이었을 거다. 오늘 시험을 빌미로 무슨 말이라도 해 볼 심산이었다. 백현은 오늘은 야자가 없다는 담임의 말을 듣고 비장한 각오로 교실을 나섰다. 옆에선 친구들이 축구하자, 야구하자, 노래방 가자 하며 백현을 잡고서 죽죽 늘어졌지만 오늘 백현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도경수에게 말을 걸어보자!

 

당연히 경수가 기숙사에 들어와있을 거라고 생각한 백현이 문을 열어젖히며 낭낭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벽에 부딪혀 되돌아나오는 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방을 휘 둘러봤다.

 

헐, 없어?

 

백현이 제 가방을 던져두고 다시 본관으로 뛰어갔다.

헥헥거리며 건물로 들어서는 백현을 보고 찬열이 백현의 뒷목을 꾹 잡아내렸다.

 

"작아보인다고 그런거 하지 말랬지!"

 

"하하, 우리 변멍뭉 형아랑 놀려구 다시 왔어요?"

 

우쭈쭈- 찬열이 백현의 말을 싸그리 무시하고 이제는 백현의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물었다.

 

"아 박찬열 진짜아-"

 

"왜애-왜애-"

 

찬열이 빙글빙글 웃으며 백현의 주먹질 아닌 주먹질을 가볍에 잡아냈다.

 

"아 몰라, 나 도경수 찾으러 가야돼."

 

도경수?

찬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너 룸메?"

 

"응."

 

"기숙사에 없어?"

 

"어, 그래서 찾아보려고."

 

"왠일이야, 말 한 마디도 안한다더니."

 

"그래서,"

 

오늘 말좀 해보려고.

백현이 비장하게 찬열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찬열이 백현의 조그만 뒷통수를 보며 피실 웃었다. 아, 저 쪼매난게.

백현은 정말 패기롭게도 3반의 앞문을 드르륵 열어제꼈다. 그에 풍기는 피자향. 왜 복도에 3반애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나 했더니 피자때문이었네. 백현이 제게로 쏟아지는 15쌍의 눈동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16번째, 제가 들어오든 말든 입 안에서 피자를 천천히 씹다가, 콜라를 마시다가를 여유롭게 반복하는 한 쌍의 눈동자의 주인 앞으로 다가섰다.

 

"도경수."

 

경수가 고개를 들어 백현을 마주봤다. 내려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형광등에 드리워진 백현의 머리칼이 유난히 어두웠고, 그에 비해 눈동자는 유난히 반짝였다. 경수의 표정이 처음으로 유해졌다. 물론, 백현에겐 보이지 않았다.

경수가 재촉하듯 백현을 바라봤다. 백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나, 나랑 얘기 좀 해!"

 

"...?"

 

"아..씨...그니까, 친하게 지내자고!"

 

백현이 뱉어내듯 한 말을 다시 곱씹은 경수가 손에 들린 피자를 입에 넣고 가방을 울러맸다. 그리곤 한 손에는 시험지, 다른 한 손에는 콜라잔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어, 경수 어디가?"

 

담임이 나가려는 경수를 보고 물었지만 고개를 까딱 하고 인사한 경수는 백현에게 눈짓 한 번 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제게 몰린 15쌍의 시선을 느낀 백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경수의 뒤를 따라나갔다.

기숙사에 도착할 때 까지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백현은 잘못한게 있는 사람처럼 쭈굴거리며 경수의 뒤를 따라갔고, 경수는 콜라를 천천히 넘기며 유유히 걸어갔다.

 

기숙사 문을 언 경수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가방과, 그 가방에서 나온것으로 추정되는 시험지들이 나풀나풀 바람에 흩날리는 중이었다.

 

"후..."

 

경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 한 발을 내딛었다.

 

"나랑 친해지고 싶어?"

 

나즈막한 미성이 백현의 귓전을 때렸다. 마치 사춘기의 막 들어선 소년같이 예쁘고 앳된, 처음 들어보는 완벽한 경수의 목소리었다. 사실 그 말의 뜻이 제 머릿속에 전달되기도 전에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 백현이었다.

 

"그럼, 방좀, 깨끗이, 쓰자, 응?"

 

국어, 수학, 영어, 지구과학, 한문.경수가 시험지를 하나하나 들어 백현의 눈앞에 내밀었다. 얼결에 받아든 백현이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경수의 들어와. 한마디에 고분고분 방에 들어와 제 가방을 챙겼다.

 

"그, 그럼 방만 깨끗이 쓰면 돼? 나랑 얘기 해?"

 

"그냥 말해. 들어줄게."

 

백현의 얼굴이 화아아악 밝아졌다. 아닌게 아니라, 마냥 쳐져있던 눈꼬리가 거의 평평하게 올라갔다면 믿겠는가. 아무튼

묵묵한 경수의 대답에 백현의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건 확실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혼자 경수 앞에서 조잘대던 백현이 이제 피곤한지 하품을 하곤 침대에 엎어졌다. 이제 할 말을 해서 시원하다는 듯, 상쾌한 표정이었다. 정말 이렇게 많은 말을 여태껏 어떻게 안하고 살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경수는 갑자기 조용해진 백현에 고개를 들어 아까까지 스피커를 켜 놓은 것 마냥 재잘대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에 보이는 백현의 모습에 피식- 바람빠지는것 마냥 웃은 경수가 백현에게로 다가갔다. 잔다. 그것도 아주 쿨쿨. 무슨 애기마냥 숨소리도 쎅쎅거린다. 뽀얗고 맨질맨질한 볼이 입술이 오물거릴적 마다 뭉근히 동그래졌다가 펴졌다를 반복한다. 4월의 끝자락, 이젠 곧 따뜻해지다 못해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베개 안고 자면 되게 더운데. 경수가 아직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있는 백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저 상태로 몇 시간을 혼자 떠들었다니. 새삼 백현의 능력에 감탄하는 경수였다.

 

시험이 금요일에 끝났던 터라 다른 방 학생들은 거의 집에 돌아갔다. 백현과 친한 친구들 중에는 304호의 찬열과 이제 친해졌다고 믿고싶은 경수만이 다였다. 그마저도 기숙사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말에 조용한 경수와 3일의 휴일을 보내야 했고, 간간히 찬열과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기도 했다.

 

"경수야아."

 

"왜."

 

"넌 친한친구 없어?"

 

"없어."

 

"어, 그래?"

 

"아, 있다."

 

"응?누구?누구누구?"

 

백현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경수가 '친하다'는 것에 극도의 호기심을 동반한 배신감을 느끼고는 정신없이 물었다.

 

"너."

 

"그래???너..너???나??"

 

백현이 벙찐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헐 대박.

 

"응, 너."

 

경수가 백현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대답했다. 햇살이 유난히 뜨거운 날이었다.

 

--

휴일 마지막 날이었다. 백현은 여느 때 처럼 조잘조잘 거리며 참새마냥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경수는 묵묵히 백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이젠 그 시끄러움에 적응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난 노래 부르는거 되게 좋아하는데, 잘은 못불러. 경수는 맨날 책만 읽고.."

 

"응."

 

"나는 필독서 말고는 읽어본 책 거의 없는데. 필독서가 정말 물리도록 재미 없어서 그런지 책에 흥미는 못 붙이겠더라."

 

"그래."

 

"책 제목 뭐야? 두껍다.."

 

"모방범."

 

"재밌어? 읽을 만해?"

 

"응, 괜찮아."

 

백현은 나긋하게 들려오는 경수의 목소리다 그렇게도 좋은지 단답형의 대답에도 마냥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그 모양새를 보던 경수가 어이가 없는지 입꼬리를 살짝 당겨 웃었다.

 

"우리 날도 좋은데 축구하러 갈래?"

 

백현이 기숙사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한 손으로 막고 눈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당연하게도 경수의 고개가 살래살래 흔들렸다. 에에- 푸쉬쉬, 바람 빠지듯 시무룩해진 백현이 고개를 축 떨구었다.

 

"땀나는거, 싫어."

 

"음, 뭐. 어쩌겠냐. 아 근데 너 3반이면 보컬과 아냐? 난 왜 너 노래부르는거 한번도 못 들어본것 같지?"

 

백현은 아까전 까지 시무룩했던 건 잊었는지 또다른 주제로 말을 이어갔다. 이젠 경수도 그런 백현이 익숙한건지 별다른 말 없이 고분고분 대답을 해 주었다.

 

"한 번도 앞에서 불러본 적 없으니까."

 

"에? 그럼 어디서 부르는데?"

 

"연습실이나 독방. 애들앞에선 안불러."

 

"너 목소리 되게 좋은데..노래 진짜 잘 부를 것 같애. 난 잘 못부르는데."

 

"왜, 너도."

 

목소리 좋은데.

 

다음날, 그 다음날이 되어도 백현의 머릿속에선 경수의 말이 계속해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목소리 좋은데. 나직히 깔린 미성이 백현의 가슴께를 간지럽혀 온다. 오늘도 벌써 몇번 째 제대로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담임에게 지적을 받은 후였다. 자꾸만 실실대는 백현 덕에 찬열까지 덩달아 백현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저거저거 왜저래 진짜.

 

"변백, 무슨일인데."

 

"흐흐흐..박찬."

 

"왜."

 

"나 목소리 좋냐?"

 

"....미친."

 

하루종일 실실 웃고다니던 백현은 기숙사에 들어와서도 계속 실실 웃었다. 허파에 바람 든 것 마냥 그냥 계속 웃는 백현을 보고 경수도 이상한듯 백현의 이마를 한 번 짚었다.

 

"변백현."

 

"응?"

 

"괜찮냐."

 

"응! 괜찮아! 완전!"

 

...그럼 제발 자자.

오늘도 경수는 한숨을 쉬었다.

 

 

--

며칠 전 부터 백현이 이상해졌다. 말은 많이 하는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어색해졌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느낌이 쎄했다. 경수는 뭔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경수야."

 

"응."

 

"난 니가 좋아."

 

"응."

 

"너무 좋아."

 

"그래."

 

"너무..."

 

오늘도 백현은 경수에게 한참 말을 걸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 좋아.'

 

너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하는 건지.

 

"백현아."

 

"..."

 

"나는."

 

"..."

 

"달이좋아."

 

"..."

 

"너무...좋아."

 

그 다음날 부터 백현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가느냔 말이다. 경수는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중간고사가 끝나나 했더니 기말고사가 다가왔고, 과제에 발표에 그리고 과별 중간평가준비까지. 요 며칠간은 백현도 힘이 그리 없는지 몇 마디 못하고 웅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피아노과라서 그런지, 감정에다 몸까지 써야하는 악기가 피아노라 백현은 유독 힘들어보였다. 분명 노래하는것도 피아노 못지 않게 상당히 많은 힘을 필요로 했지만, 저는 쓰러질 만큼 힘이 드는건 아니었기에 경수는 오늘도 낑낑거리며 잠든 백현을 바라보다 침대에 누웠다.

 

달,달 무슨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동산위에 떴지.

 

곧 중간평가 날이 왔다. 드디어 도경수 노래 들어볼 수 있겠다!! 잔뜩 흥분한 백현이 찬열의 팔을 잡아끌며 보컬과 중간평가실로 들어섰다. 낯선 얼굴에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은 둘은 어색하게 몰래 빈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곧..

 

"느그 느그즈믈르흐쓸튼드...(내가 나가지 말라 했을텐데...)"

 

담임의 손에 귀를 하나씩 잡혀 끌려나가고 말았다.

 

"아..쌤 저 도경수 노래 들어야 한단 말이에요!"

 

"으이구, 어디서 큰소리야 이 똥강아지야. 라 캄파넬라. ㄹ이라서 곧 니 차례다."

 

"아아! 왜 이름 순대로 안하고 곡명 순서에요! 아 진짜아.."

 

"내가 너라면 이럴 시간에 연습 한번 더 하겠다. 당장 들어가!"

 

"쌤...쌔앰!!"

 

백현의 비명이 처량하게 복도를 울렸다. 찬열은 묵묵히 백현을 의자에 앉히고 팔짱을 꼈다.

 

"빨리 쳐, 똥강아지야."

 

"싫어! 도경수 보러 갈거야!"

 

"...치자, 응?"

 

"..."

 

곧 울것같은 표정을 하고, 백현이 거칠게 피아노 덮개를 올렸다. 상당히 심통이 난 표정으로 백현은 건반에 손을 올렸다. 옅은 트레몰로로 시작한...이 아니라 엄청 쩌렁쩌렁한 트레몰로로 시작한 라 캄파넬라는, 백현이 페달을 밟고선 떼지도 않아 몇 초가 지나자 곧 엄청난 소음덩어리로 변해버렸고, 방음벽까지 뚫을 기세의 백현에 찬열이 백현의 몸을 돌려 끌어안았다.

 

씩씩대는 백현의 숨소리가 곧 잦아진다 싶더니 또다시 울컥했는지 다시 불규칙적으로 씩씩거린다. 찬열은 백현을 간이 의자에 앉히고 달래듯 말을 걸었다.

 

"변백현, 뚝."

 

"흐으...도경수 보꺼야아...흐.."

 

차마 찬열을 밀치고 연습실 문을 제껴열고 경수가 있는 보컬과로 갈 배짱은 없는지 백현은 두 주먹을 쥐고서 찬열의 가슴팍을 퍽퍽 때리고 있었다.

 

"아파.아파 변백! 으아!"

 

"...경수보여줘어...도경수 보러가꺼야!"

 

코도 막혔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한껏 발산하며 찬열에게 땡깡을 부리던 백현은 곧 제 풀에 지쳐 가슴팍을 크게 올렸다 내렸다 했다.

 

"변백현 학생?"

 

"아, 네."

 

"차례 다 되었습니다. 따라오세요."

 

찬열에게 기대다 시피 추욱 늘어져 백현이 도착한 곳은 피아노과 중간평가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거칠게 닦고서, 백현은 검은 가죽으로 된 피아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게요."

 

처음에 부드럽게 시작하던 선율이 점점 갈수로 복잡하고 힘이 실렸다.그에 듣던 찬열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백현은 그렇게도 서러운지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경수가 헉헉대며 뛰어들어왔다. 땀에 젖어 살짝 눌러붙은 앞머리에, 이렇게 뛰어보는 건 처음이라는 듯 붉게 달아있는 볼.

 

"하아..변백현."

 

"....?"

 

백현이 용케도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곡은 막 끝부분을 마무리 한 뒤였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밝아졌다.

 

"나와, 멍청아."

 

 

너는 한 마리 나비 같더라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는 칼이,
나의 심장을 파고드는
나는 그 칼 끝을 손으로 잡고 미소짓는다.
얼음을 녹인다.
물이 되어 흐른다.
네가 보인다. 웃는다.

달빛이 흘러내린다.
나만의 달이 아이처럼 운다.
달의 눈꼬리가 붉다.
나 때문인가, 싶다.
그래서 그냥, 다가가 안았다.
물냄새와, 내가 좋아하는 달빛 향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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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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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처럼 돌고돌아 다시 꽃피는 봄이 오면

 

 

사방이 고요하다. 말간 유리창 너머로 파도가 철썩인다.

하늘도 어둡다.

언제부터인가 비가 촉촉이 내리기 시작했다.

소리 없이.

 

"예쁘다."

 

듣기 좋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공기를 진동시킨다. 파도치는 모양새가 예쁘다는 건지, 아니면 비 내리는 풍경이 예쁘다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유리창에 반투명하게 비친 제 눈동자가 예쁘다는 건지. 주어를 잃어버린 문장이 긴 여운을 남기며 아직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닌다.

 

눈을 감고, 큰 유리창 앞에 쪼그려 앉았다. 비가 내려서인지는 몰라도, 창문 틈새로는 꽤나 차가운 바람이 쎅쎅대며 들어온다. 그 냉기에도 아랑곳 않은 채 소년은 무릎에 얼굴을 폭 묻는다.

 

"빨리 와."

소년의 마른 어깨가 떨리기 시작했다. 사실 소년은 비가 무섭다.

제 사람이 좋아하는 비가 예쁠 뿐이다.

 

--

투둑투둑하며 우산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무겁다. 어깨에 바짝 메어져 지금은 제 등판을 콩콩 두드리는 제 가방도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운 것 같기도.

 

빗방울이 촘촘히 묻어 있는 그네에 앉아 소년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러고는 다리를 앞뒤로 번갈아가며 흔든다. 어느 샌가 우산은 놀이터 저편에 나동그라져있고, 짙은 고동색의 머리카락은 물기를 살짝 머금은 채로 젖어있다. 초가을이라 약간은 서늘한 비 냄새. 입고 있는 춘추복은 등과 어깨부분이 빗방울 모양으로 동그랗게 젖어있다.

 

"보고 싶다."

 

적당히 잘 빠진 입술 사이로, 달큰하게 울리는 목소리가 삐져나온다. 울음을 참는 듯 예쁜 입술을 고른 이로 꾹 깨문다. 푹 숙인고개 덕에 머리카락에서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내린다.

 

소년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렇게 울 폼새를 드러내 놓고서. 이내 싱긋- 하며 웃기까지 한다. 그리곤 천천히 그네에서 일어나 형편없이 나동그라진 검은색의 우산을 집어 든다.사람들은 비 맞을 거 다 맞고 우산이 뭣 하러 필요하겠냐며 다시 그 우산을 쓰는 소년을 보며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소년은, 꿋꿋이 그 우산을 다시 쓰고는 길을 걷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

결국 소년은 감기에 걸렸다. 비를 맞고도 아무 생각 없이 축축한 교복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집으로 들어가서 그랬을 것이다. 그 다른 이가 보았더라면 질책하며 한바탕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모양새였다.

 

소년은 비를 좋아했다. 비가 좋다. 비 내린 후의 그 꿉꿉한 흙냄새와 서늘한 바람까지 하나하나 전부 좋아했다. 결국 그러다가 감기에 걸려버리곤 하지만.

 

소년은 감기에 걸려버렸음에도 꿋꿋이 학교에 갔다. 저 자신을 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집에 소년의 감기기운만이 옅게 남아 있다가 이내 점점 사라진다.

 

결국 소년은 조퇴를 했다. 두 볼이 열에 달아올라 붉어졌고, 가물거리는 시야는 굳이 소년이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초점 없는 시선에 누구나 알 정도였다. 소년은 아팠고, 그래서 그 다른 이 말고는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 이에게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홀로, 이 빗소리를 들으며 떨고 있을 제 사람에게 가야했다. 소년은 감기에 걸려 있었고,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기나긴 폭우는 사람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

소년은 무작정 그 이가 있는 곳을 목적지로 하는 버스를 잡아탔다. 간신히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곧 떠나는 버스를 잡을 수 있었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곧 그 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곧아졌다.

 

버스는 두 시간 반을 달려 바닷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했다. 비는 아직 오고 있다. 조금 전 보다 조금 더 세차게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소년은 발걸음을 빨리 했다.

 

얼마 안 되어 소년은 한 주택 앞에 섰다. 높은 담이 거슬렸다. 그렇지만 소년은 그냥 담을 넘어보기로 했다. 미끄러지길 대여섯 번, 포기 할 만도 했지만 소년은 지금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볼이 화끈거리고 숨이 더워지는 게 단순한 감기는 아닌 듯 했다. 소년이 담을 넘었다.

 

--

담요를 발끝에 둔 채,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던 소년이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그러자 점점 소리가 선명해졌다.

 

도경수! 도경수! 안에 있어?”

 

듣기 좋던 목소리가 다 갈라져있다. 소년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일으켜 문간으로 나간다. 꿈일까, 실제일까. 소년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아 열었다.

 

훅 끼쳐오는 바닷바람과 서늘한 비 냄새. 거기에 더해진, 익숙하고, 따듯한 향기. 소년은 제 앞의 소년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축축하게 적셔진 셔츠가 소년의 서늘한 볼에 닿고, 그 다른 소년의 열로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가슴께에 그대로 붙어온다. 푸슬푸슬, 울 듯 웃은 소년이 제 허리에 감긴 팔을 풀어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경수야.”

 

“...”

 

나 왔다.”

 

“...”

 

울지 말고.”

 

“.........”

 

나랑 도망칠래?”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온 얼굴이 눈물로 가득했다.

 

“,..., 감기, 걸렸..”

 

, 괜찮아. 좀 자면 될거야.”

 

소년이 웃으며 다른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도 불안한지 경수는 자꾸만 소년을 누이려 했다.

 

“...누워봐, 일단, 좀 자고, 약 먹자...”

 

지금 안 나가면, 우리 계속 여기 있어야 해.”

 

“...괜찮아. 죽어도, 너만, 있으면 돼.”

 

여전히 바보같애.”

 

상관없어. 멀쩡하게 내 눈앞에 있으면 돼.”

 

그래, , 좀 잘래...”

 

그래.”

 

일어나서, 나랑 놀자. 백현아. 이젠 어디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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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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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작과 끝은 너였어.


 


 



너는 반짝거리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너의 뽀얗고 조그마한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작고, 깊고 올망이는 너의 눈동자처럼 반짝이는 것들.

그런 네가 왜 나를 좋아해주었는지, 왜 날 보며 반짝거린다 감탄했는지, 나는 영원히 모를 일이다.

별이 촘촘히도 박힌 밤하늘을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네가 보고싶다.


--


"안녕하세요."


"네?"


"혹시 시간 있으세요?"


"....저..."


웬 미친놈이었다. 다짜고짜 지하철 계단을 급히 올라가고 있던 내 팔을 덥썩 잡더니 시간이 있냐고 묻던 사람. 

나도 큰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 조금 작은듯한 키에 체구도 왜소했고, 무엇보다 품이 약간 큰 교복도 내가 그 사람을 귀찮게 여기는 것에 한몫했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모질지 못했다. 내가 바쁘면 바빠서 안된다고, 싫으면 싫다고 딱 잘라 말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인생이 여러번 꼬이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낯가림도 심했다. 그리고, 회사 출근시간을 5분남짓 남겨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래도 그 미친놈은 눈치는 빨랐는지, 아니면 나의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굉장히 여실히 드러났는지, 친절하게도 무슨 일 있냐고 먼저 물어주었다.


"회사, 좀 늦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럼.."


그 사람은 내게 직사각형으로 생긴 무언가를 손에 꼭 쥐여주고는 말했다.


"학교끝나면, 전화할게요."


정말 이상한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7시쯤 전화가 왔다. 혹시 휴대폰이 꺼질까 내 폰을 충전하고 나서 친절하게 그 아이의 휴대폰도 100퍼센트 만땅으로 채워주는 호의까지 보였다. 평범하지 않았던 일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그날의 나는 하루종일 조금 들떠 있었다.


"여보세요."


"우리 만날까요?"


다짜고짜 만남을 권하는 질문아닌 질문에 나는 또 당황을 해버리고, 일단 휴대폰을 돌려줘야했기에 퇴근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결정을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해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예뻤다. 웃으면 시원하게 벌어지는 입과 그 아래 약간 도드라진 앞니가 귀여웠다. 미소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머리를 두어 번 털고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


"응?"


"나랑 연락해요."


"뭐..?"


멍했다. 대체 이 아이가 뭐라고 하는건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뭐지? 뭐지? 하다가 그냥 순수한 의도일거라 생각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던 것 같다.


"무슨뜻인지 알고 그렇다고 한거에요?"


"응?"


"제 이름은 김민석이에요. 청주고등하교 3학년. 스물 한 살. 2년 휴학했었어요. 제가 아저씨랑 알고 지내고 싶은 이유는,"


아저씨가 이제까지 제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반짝거려서에요.


그 말을 하며 환히 웃는 네 모습에, 내가 반했던 것 같기도 하다.


-

그 이후로 몇 번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기도 하면서 내 감정이 커져갔다. 음, 정정하자면 서로의 감정이 커져갔다고 하는게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어두침침하고 단절되어있던 내 세상이 아이로인해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고, 알고 지낸지 세달 만에, 아이의 고백을 들었다.


"아저씨가 좋아요."


"민석아?"


"외롭지 않아요. 그리고 외롭지 않을 거에요."


민석이가 평소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가 있으니까."


-


민석이의 상처투성이 팔을 보게 된 건 그 해 여름이었다. 하복은 입었는데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고 있어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벗어보라는 내 말에 당황해하는 아이를 보고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억지로는 아니었지만 한 번 벗어보라는 내 말에 망설이다 조용히 벗은 뽀얀 두 팔은 온통 정체모를 상처로 가득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금씩 떠는 아이를 끌어안아 토닥였다. 미안해, 미안해.


"아저씨."


"응,"


"좋아해요."


"응, 나도 민석아."


"끝까지 있어줘요."


"그래."


그날, 네게 끝을 약속했다.


-


"나, 죽을거에요."


꿈꾸듯 말하는 너의 모습에 잠시 빠져들었었지만, 그 내용만은 아니었다. 두 눈이 번쩍 떠질만큼의 큰 충격이었다.


"뭐? 너..!"


"약속했잖아요. 끝까지 있어주기로."


그쵸? 하며 너는 예의 그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죽는다는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덜덜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식상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푸슬푸슬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찾아와줘요. 말도 걸어주고."


"지금도, 지금도 할 수 있잖아."


나는 필사적이었다. 아이가 정말 가버릴 것 같아서.


"난 병아리가 좋아요."


"민석아."


"그치만 병아리는 날지못해서-"


"..."


"추락하죠."


"...민석아."


"나랑 방금 끝까지 있어준 거에요."


"김민석."


"안녕, 변백현."


잠시 그 아이의 입에서 굴려지는, 각이 져 딱딱하기 그지 없는 내 이름이 너무 벅차서, 울 뻔 했다.
아이는 결심을 한 것 같았다.
'결심' 이라는 말을 할 만큼 단순한 이야깃거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튼,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아이는 그렇게 웃으며 내 품에서 날아갔다.

 

 

병아리는 날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갔으니까.


아이는 내가 의지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던 걸까.
왜 그렇게 쉽게 나를 놓아버린걸까.
몇날 몇일을 울며 지냈다.
처음 병가를 내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인처럼 주저앉아 울고 자고를 반복했다.
아이가 너무 보고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마지막 말처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민석아, 안녕.
마중나와 있어 줄래?


날아라, 내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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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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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됴준/세준]

조각 2016. 8. 1. 20:48
묵묵한 브라콤 됴 vs 대놓고 들이대는 고속도로 세니

 

-일단 준면이랑 경수는 아빠가 다른 형제

가정사는 복잡하므로 패스하고

암튼 경수가 12살때 준면이 13살로 경수가 준면이네 집에 들어와서 같이 살게 됨.

경수는 같이 살던 아빠가 돌아가셔서 경수네로 오게됨

준면이는 원래 자기 엄마아빠가 돌아가셔서 혼자 살고 있었고, 경수는 준면과 엄마도 같고 하니 묘한 동질감 때문인지 준면이를 잘 따르고 좋아함

하얗고 이쁘고 성격도 유하고 또 잘 챙겨주는 모습때문에 경수의 머리가 좀 커지자 진짜 브라콤이 장난아니게 생김

근데 성격상 준면이 앞에서는 티도 못내고 속으로만 낑낑대다가 누가 준면이 괴롭혔다거나 욕했다거나 하는 소문 들리면 경수각성.

자기 반에 있다가 보면 준면이 욕하고 부모님 이야기 들리곤 한데 3번 참고 또 그 소리가 들리면 교실 뒷편으로 나가서 쓰레기통 들고 그 이야기한 인간들 머리위에 부어준다고함.

수업시간이든 무슨시간이든 얄짤없음.

그리고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적거나 쓰레기통이 없는 곳이면 주위에 어떤 것이든 이용한다고 함

아이러니 한건 경수가 사고를 쳐서 준면이 불려가면 준면이 사과를 한다는 것

그런 준면을 보고서라도 참고 싶은데 막상 그 상황이 또 닥치면 똑같이 하게된다고

 

-준면이가 나이에 비해 작고 약하니까 중학교 중반이랑 고등학교 들어서 종종 돈도 뜯기고 괴롭힘당하고 그랬음

(경수는 또래보다 작아도 애가 강단있고 독해서 잘 못건드림)

준면이는 '경수한테 말하거나 경수가 알면 많이 걱정할거야!' 하며 두주먹 불끈 쥐고 김캔디 모드로 들어감

내가 아픈건 괜찮지만 경수가 걱정하는건 싫어! 이런 마인드

그래서 경수도 모르고 있다가 고1, 준면이는고2때 경수는 야자 안하고 집에 있는데 보통 준면이가 야자 하고 돌아오면 경수는 자고 있음

자다가도 준면이가 전화오거나 갑자기 비 오면 주섬주섬 옷 껴입고 학교로 달려나가긴 하지만 잠이 많은 경수는 그때쯤이면 꿈나라에 가있음

그날따라 잠이 안와서 준면이형 데리러 갈까 고민하던 경수는 '가자!' 하고 티비 끄고 츄리닝 차림으로 학교로 향함

 

근데 중간쯤 가다보니 무언가가 비틀대며 걸어오고 있는거

보니까 무언가 가 아니고 자기형

뭐지? 아픈가? 싶어서 도도도 뛰어갔는데 글쎄 자기 보고 동그랗게 놀라는 얼굴이 부어올라있는거임

평소 같았으면 놀라는 얼굴 귀여워서 어쩔 줄 모르다가(물론 속으로) 그냥 뒤에서 안아버렸을 경순데 이건 귀엽고 예쁘고를 떠나서 경수 눈이 확뒤집힌거

이...무슨..! 자기는 소중해서 쓰다듬쓰다듬도 제대로 못하는, 만지면 부서질까 불면 날아갈까 부둥부둥 이뻐하는 제 형을 누가 이렇게 어?

지금 경수는 세상이 두 쪽 난 것 같음

준면이 앞에서는 바르고 고운말을 쓰며 과묵하지만 이쁜 동생 코스프레를 하고있던 경수는 그대로 아무말 없이 준면이를 업고 집으로 걸어감

가는 중에 준면이가 계속 경수야? 형괜찮은데..경수야? 계속 불러도 묵묵부답

이쯤되니 준면이는 아픈 것보다 경수의 반응이 더 무서워지기 시작함

곧 집 대문이 보이고, 이제 막 준면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해짐

경수야아- 흐윽- 왜그래-

코가 맹맹해져서 그런지 끝을 느리며 훌쩍이는 준면이 때문에 정신을 차린 경수가 됴절부절 하며 준면을 안아들고 조심스레 신발을 벗김

어,그,저, 형...미안해...그...일단 뭐냐, 그...치료부터 하자.

이건 뭐 사과를 하는건지  치료를 하자는건지 모를 경수의 흑역사가 생성됨

 

준면이는 이렇게 당황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경수를 처음 봐서 훌쩍거림을 뚝 멈추고 경수의 말에 응응..으응. 맞장구 쳐줌

 

경수는 준면에게 구급상자 어딨는지 물어서 직접 치료.

치료 중에 몇 번이고 정신줄을 놓고 화를 낼뻔한걸 꾹 참고 다 치료하곤 준면이에게 물음

형, 누구야?

준면이는 또 처음보는 냉경수의 모습에 당황

어? 어어? 하면서 아방하게 있다가 진지하게 살얼음이 될것같은 경수의 모습에 결국 굴복

 

경수가 그 다음날 학교에 전화해서 준면을 병결처리하고(이 과정에서 준면은 평소의 온화한 모습을 버리고 꼭 학교는 가야한다며 빽빽거렸지만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결국 경수의 뜻대로 되었다.) 준면이를 그렇게 만든 인간 찾아가서 처절하게 만들어버림

경수는 싸움을 잘하는건 아니지만 체격 자체는 다부지고 악이랑 깡다구+브라콤 으로 똘똘 무장한 경수를 그놈들은 이길 수 없었다고.

그 다음부터는 절대 준면을 아무도 건드릴 수 없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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