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Moonlight

조각 2016. 8. 7. 19:49

w.초록레몬

 

 

 

눈꼬리가 쳐지고 입 모양도 뾰족한 것이 살짝만 건드려도 흐엥 하고 울음을 터뜨릴  모양새라 경수에게 백현의 첫 인상은 그닥 좋지 못했다.
워낙 깔끔한 걸 좋아하기도 했고, 시끄럽고 귀찮은 존재는 정말이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었는데, 백현은 첫날부터 딱 그 범주 안에서 놀고,먹고,뒹굴거렸다. 거기다 빵실하고 뽀얀 볼살까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도 그만큼 뽀얗고 말랑한 볼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같은 기숙사를 쓰고 있음에도 둘은 2주가 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경수의 성격상 이런 침묵은 익숙했고, 또 편했기 때문에 백현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귀찮은 시끄러움보다는 어색한 침묵을 선호했으니까.

하지만 백현의 상태는 그와 반대였다. 제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말을 걸어보자는 스타일이라 지금 백현은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거는 백현이었지만, 뭔지 모를 경수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 비슷한 것이 자꾸만 백현의 입에 급제동을 걸었다.

 

정작 둘이 일어나 있는 상태에서 얼굴을 보는 시간은 한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6시에 일어나 씻고 조식을 먹으러 가는 경수와, 7시에 비척대며 일어나 머리만 감고 교실로 뛰어가는 백현. 거기다 교실도 3반과 15반. 2층과 4층. 기숙사에 돌아오면 12시가 다 되어가고, 그때쯤 되면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더라도 피곤해서 제정신이 아니곤 했기 때문에 그때의 한 시간마저 침묵으로 보내곤 했다.-백현은 그마저도 어색해하곤 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1년간은 같은 방을 쓸건데, 정말 이러다가 1년동안 아무말도 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백현이 오소소 돋아난 소름에 몸을 떨었다. 으..아무 말도 안하다니. 그런 건 백현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백현이 경수에게 말을 걸자 결심한 건  4월말이 다 되어서였다. 그러니까, 중간고사를 막 친 마지막 날이었을 거다. 오늘 시험을 빌미로 무슨 말이라도 해 볼 심산이었다. 백현은 오늘은 야자가 없다는 담임의 말을 듣고 비장한 각오로 교실을 나섰다. 옆에선 친구들이 축구하자, 야구하자, 노래방 가자 하며 백현을 잡고서 죽죽 늘어졌지만 오늘 백현의 목표는 단 하나였다.

 

도경수에게 말을 걸어보자!

 

당연히 경수가 기숙사에 들어와있을 거라고 생각한 백현이 문을 열어젖히며 낭낭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벽에 부딪혀 되돌아나오는 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거리곤 방을 휘 둘러봤다.

 

헐, 없어?

 

백현이 제 가방을 던져두고 다시 본관으로 뛰어갔다.

헥헥거리며 건물로 들어서는 백현을 보고 찬열이 백현의 뒷목을 꾹 잡아내렸다.

 

"작아보인다고 그런거 하지 말랬지!"

 

"하하, 우리 변멍뭉 형아랑 놀려구 다시 왔어요?"

 

우쭈쭈- 찬열이 백현의 말을 싸그리 무시하고 이제는 백현의 머리를 헝크러뜨리며 물었다.

 

"아 박찬열 진짜아-"

 

"왜애-왜애-"

 

찬열이 빙글빙글 웃으며 백현의 주먹질 아닌 주먹질을 가볍에 잡아냈다.

 

"아 몰라, 나 도경수 찾으러 가야돼."

 

도경수?

찬열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너 룸메?"

 

"응."

 

"기숙사에 없어?"

 

"어, 그래서 찾아보려고."

 

"왠일이야, 말 한 마디도 안한다더니."

 

"그래서,"

 

오늘 말좀 해보려고.

백현이 비장하게 찬열의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찬열이 백현의 조그만 뒷통수를 보며 피실 웃었다. 아, 저 쪼매난게.

백현은 정말 패기롭게도 3반의 앞문을 드르륵 열어제꼈다. 그에 풍기는 피자향. 왜 복도에 3반애들이 한명도 보이지 않나 했더니 피자때문이었네. 백현이 제게로 쏟아지는 15쌍의 눈동자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16번째, 제가 들어오든 말든 입 안에서 피자를 천천히 씹다가, 콜라를 마시다가를 여유롭게 반복하는 한 쌍의 눈동자의 주인 앞으로 다가섰다.

 

"도경수."

 

경수가 고개를 들어 백현을 마주봤다. 내려다보고 있어서 그런지 형광등에 드리워진 백현의 머리칼이 유난히 어두웠고, 그에 비해 눈동자는 유난히 반짝였다. 경수의 표정이 처음으로 유해졌다. 물론, 백현에겐 보이지 않았다.

경수가 재촉하듯 백현을 바라봤다. 백현이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나, 나랑 얘기 좀 해!"

 

"...?"

 

"아..씨...그니까, 친하게 지내자고!"

 

백현이 뱉어내듯 한 말을 다시 곱씹은 경수가 손에 들린 피자를 입에 넣고 가방을 울러맸다. 그리곤 한 손에는 시험지, 다른 한 손에는 콜라잔을 들고 교실을 나섰다.

 

"어, 경수 어디가?"

 

담임이 나가려는 경수를 보고 물었지만 고개를 까딱 하고 인사한 경수는 백현에게 눈짓 한 번 하고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제야 제게 몰린 15쌍의 시선을 느낀 백현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경수의 뒤를 따라나갔다.

기숙사에 도착할 때 까지 둘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백현은 잘못한게 있는 사람처럼 쭈굴거리며 경수의 뒤를 따라갔고, 경수는 콜라를 천천히 넘기며 유유히 걸어갔다.

 

기숙사 문을 언 경수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가방과, 그 가방에서 나온것으로 추정되는 시험지들이 나풀나풀 바람에 흩날리는 중이었다.

 

"후..."

 

경수가 한숨을 푹 내쉬고 한 발을 내딛었다.

 

"나랑 친해지고 싶어?"

 

나즈막한 미성이 백현의 귓전을 때렸다. 마치 사춘기의 막 들어선 소년같이 예쁘고 앳된, 처음 들어보는 완벽한 경수의 목소리었다. 사실 그 말의 뜻이 제 머릿속에 전달되기도 전에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린 백현이었다.

 

"그럼, 방좀, 깨끗이, 쓰자, 응?"

 

국어, 수학, 영어, 지구과학, 한문.경수가 시험지를 하나하나 들어 백현의 눈앞에 내밀었다. 얼결에 받아든 백현이 말 잘듣는 강아지처럼 경수의 들어와. 한마디에 고분고분 방에 들어와 제 가방을 챙겼다.

 

"그, 그럼 방만 깨끗이 쓰면 돼? 나랑 얘기 해?"

 

"그냥 말해. 들어줄게."

 

백현의 얼굴이 화아아악 밝아졌다. 아닌게 아니라, 마냥 쳐져있던 눈꼬리가 거의 평평하게 올라갔다면 믿겠는가. 아무튼

묵묵한 경수의 대답에 백현의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졌다는건 확실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혼자 경수 앞에서 조잘대던 백현이 이제 피곤한지 하품을 하곤 침대에 엎어졌다. 이제 할 말을 해서 시원하다는 듯, 상쾌한 표정이었다. 정말 이렇게 많은 말을 여태껏 어떻게 안하고 살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경수는 갑자기 조용해진 백현에 고개를 들어 아까까지 스피커를 켜 놓은 것 마냥 재잘대던 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에 보이는 백현의 모습에 피식- 바람빠지는것 마냥 웃은 경수가 백현에게로 다가갔다. 잔다. 그것도 아주 쿨쿨. 무슨 애기마냥 숨소리도 쎅쎅거린다. 뽀얗고 맨질맨질한 볼이 입술이 오물거릴적 마다 뭉근히 동그래졌다가 펴졌다를 반복한다. 4월의 끝자락, 이젠 곧 따뜻해지다 못해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베개 안고 자면 되게 더운데. 경수가 아직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있는 백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저 상태로 몇 시간을 혼자 떠들었다니. 새삼 백현의 능력에 감탄하는 경수였다.

 

시험이 금요일에 끝났던 터라 다른 방 학생들은 거의 집에 돌아갔다. 백현과 친한 친구들 중에는 304호의 찬열과 이제 친해졌다고 믿고싶은 경수만이 다였다. 그마저도 기숙사 밖으로는 나갈 수 없다는 말에 조용한 경수와 3일의 휴일을 보내야 했고, 간간히 찬열과 전화를 하거나 문자를 하기도 했다.

 

"경수야아."

 

"왜."

 

"넌 친한친구 없어?"

 

"없어."

 

"어, 그래?"

 

"아, 있다."

 

"응?누구?누구누구?"

 

백현은 내가 모르는 누군가와 경수가 '친하다'는 것에 극도의 호기심을 동반한 배신감을 느끼고는 정신없이 물었다.

 

"너."

 

"그래???너..너???나??"

 

백현이 벙찐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물었다. 헐 대박.

 

"응, 너."

 

경수가 백현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으며 대답했다. 햇살이 유난히 뜨거운 날이었다.

 

--

휴일 마지막 날이었다. 백현은 여느 때 처럼 조잘조잘 거리며 참새마냥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경수는 묵묵히 백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이젠 그 시끄러움에 적응이라도 된 것 같았다.

 

"난 노래 부르는거 되게 좋아하는데, 잘은 못불러. 경수는 맨날 책만 읽고.."

 

"응."

 

"나는 필독서 말고는 읽어본 책 거의 없는데. 필독서가 정말 물리도록 재미 없어서 그런지 책에 흥미는 못 붙이겠더라."

 

"그래."

 

"책 제목 뭐야? 두껍다.."

 

"모방범."

 

"재밌어? 읽을 만해?"

 

"응, 괜찮아."

 

백현은 나긋하게 들려오는 경수의 목소리다 그렇게도 좋은지 단답형의 대답에도 마냥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그 모양새를 보던 경수가 어이가 없는지 입꼬리를 살짝 당겨 웃었다.

 

"우리 날도 좋은데 축구하러 갈래?"

 

백현이 기숙사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한 손으로 막고 눈을 살짝 찡그리며 물었다. 당연하게도 경수의 고개가 살래살래 흔들렸다. 에에- 푸쉬쉬, 바람 빠지듯 시무룩해진 백현이 고개를 축 떨구었다.

 

"땀나는거, 싫어."

 

"음, 뭐. 어쩌겠냐. 아 근데 너 3반이면 보컬과 아냐? 난 왜 너 노래부르는거 한번도 못 들어본것 같지?"

 

백현은 아까전 까지 시무룩했던 건 잊었는지 또다른 주제로 말을 이어갔다. 이젠 경수도 그런 백현이 익숙한건지 별다른 말 없이 고분고분 대답을 해 주었다.

 

"한 번도 앞에서 불러본 적 없으니까."

 

"에? 그럼 어디서 부르는데?"

 

"연습실이나 독방. 애들앞에선 안불러."

 

"너 목소리 되게 좋은데..노래 진짜 잘 부를 것 같애. 난 잘 못부르는데."

 

"왜, 너도."

 

목소리 좋은데.

 

다음날, 그 다음날이 되어도 백현의 머릿속에선 경수의 말이 계속해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목소리 좋은데. 나직히 깔린 미성이 백현의 가슴께를 간지럽혀 온다. 오늘도 벌써 몇번 째 제대로 연습을 하지 않는다고 담임에게 지적을 받은 후였다. 자꾸만 실실대는 백현 덕에 찬열까지 덩달아 백현을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저거저거 왜저래 진짜.

 

"변백, 무슨일인데."

 

"흐흐흐..박찬."

 

"왜."

 

"나 목소리 좋냐?"

 

"....미친."

 

하루종일 실실 웃고다니던 백현은 기숙사에 들어와서도 계속 실실 웃었다. 허파에 바람 든 것 마냥 그냥 계속 웃는 백현을 보고 경수도 이상한듯 백현의 이마를 한 번 짚었다.

 

"변백현."

 

"응?"

 

"괜찮냐."

 

"응! 괜찮아! 완전!"

 

...그럼 제발 자자.

오늘도 경수는 한숨을 쉬었다.

 

 

--

며칠 전 부터 백현이 이상해졌다. 말은 많이 하는것 같은데 왠지 모르게 어색해졌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느낌이 쎄했다. 경수는 뭔가 모를 불안함을 느꼈다.

 

"경수야."

 

"응."

 

"난 니가 좋아."

 

"응."

 

"너무 좋아."

 

"그래."

 

"너무..."

 

오늘도 백현은 경수에게 한참 말을 걸다가 잠에 빠져들었다.

 

'너무 좋아.'

 

너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하는 건지.

 

"백현아."

 

"..."

 

"나는."

 

"..."

 

"달이좋아."

 

"..."

 

"너무...좋아."

 

그 다음날 부터 백현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순식간에 왔다가 순식간에 가느냔 말이다. 경수는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중간고사가 끝나나 했더니 기말고사가 다가왔고, 과제에 발표에 그리고 과별 중간평가준비까지. 요 며칠간은 백현도 힘이 그리 없는지 몇 마디 못하고 웅얼거리며 잠에 들었다.

피아노과라서 그런지, 감정에다 몸까지 써야하는 악기가 피아노라 백현은 유독 힘들어보였다. 분명 노래하는것도 피아노 못지 않게 상당히 많은 힘을 필요로 했지만, 저는 쓰러질 만큼 힘이 드는건 아니었기에 경수는 오늘도 낑낑거리며 잠든 백현을 바라보다 침대에 누웠다.

 

달,달 무슨달.
쟁반같이 둥근달.
어디어디 떴나,
동산위에 떴지.

 

곧 중간평가 날이 왔다. 드디어 도경수 노래 들어볼 수 있겠다!! 잔뜩 흥분한 백현이 찬열의 팔을 잡아끌며 보컬과 중간평가실로 들어섰다. 낯선 얼굴에 모든 이들의 주목을 받은 둘은 어색하게 몰래 빈 자리를 찾아 앉았지만, 곧..

 

"느그 느그즈믈르흐쓸튼드...(내가 나가지 말라 했을텐데...)"

 

담임의 손에 귀를 하나씩 잡혀 끌려나가고 말았다.

 

"아..쌤 저 도경수 노래 들어야 한단 말이에요!"

 

"으이구, 어디서 큰소리야 이 똥강아지야. 라 캄파넬라. ㄹ이라서 곧 니 차례다."

 

"아아! 왜 이름 순대로 안하고 곡명 순서에요! 아 진짜아.."

 

"내가 너라면 이럴 시간에 연습 한번 더 하겠다. 당장 들어가!"

 

"쌤...쌔앰!!"

 

백현의 비명이 처량하게 복도를 울렸다. 찬열은 묵묵히 백현을 의자에 앉히고 팔짱을 꼈다.

 

"빨리 쳐, 똥강아지야."

 

"싫어! 도경수 보러 갈거야!"

 

"...치자, 응?"

 

"..."

 

곧 울것같은 표정을 하고, 백현이 거칠게 피아노 덮개를 올렸다. 상당히 심통이 난 표정으로 백현은 건반에 손을 올렸다. 옅은 트레몰로로 시작한...이 아니라 엄청 쩌렁쩌렁한 트레몰로로 시작한 라 캄파넬라는, 백현이 페달을 밟고선 떼지도 않아 몇 초가 지나자 곧 엄청난 소음덩어리로 변해버렸고, 방음벽까지 뚫을 기세의 백현에 찬열이 백현의 몸을 돌려 끌어안았다.

 

씩씩대는 백현의 숨소리가 곧 잦아진다 싶더니 또다시 울컥했는지 다시 불규칙적으로 씩씩거린다. 찬열은 백현을 간이 의자에 앉히고 달래듯 말을 걸었다.

 

"변백현, 뚝."

 

"흐으...도경수 보꺼야아...흐.."

 

차마 찬열을 밀치고 연습실 문을 제껴열고 경수가 있는 보컬과로 갈 배짱은 없는지 백현은 두 주먹을 쥐고서 찬열의 가슴팍을 퍽퍽 때리고 있었다.

 

"아파.아파 변백! 으아!"

 

"...경수보여줘어...도경수 보러가꺼야!"

 

코도 막혔는지 코맹맹이 소리를 한껏 발산하며 찬열에게 땡깡을 부리던 백현은 곧 제 풀에 지쳐 가슴팍을 크게 올렸다 내렸다 했다.

 

"변백현 학생?"

 

"아, 네."

 

"차례 다 되었습니다. 따라오세요."

 

찬열에게 기대다 시피 추욱 늘어져 백현이 도착한 곳은 피아노과 중간평가실. 아직 채 마르지 않은 눈물을 거칠게 닦고서, 백현은 검은 가죽으로 된 피아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게요."

 

처음에 부드럽게 시작하던 선율이 점점 갈수로 복잡하고 힘이 실렸다.그에 듣던 찬열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고, 백현은 그렇게도 서러운지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경수가 헉헉대며 뛰어들어왔다. 땀에 젖어 살짝 눌러붙은 앞머리에, 이렇게 뛰어보는 건 처음이라는 듯 붉게 달아있는 볼.

 

"하아..변백현."

 

"....?"

 

백현이 용케도 저를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곡은 막 끝부분을 마무리 한 뒤였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이 밝아졌다.

 

"나와, 멍청아."

 

 

너는 한 마리 나비 같더라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가로지르는 칼이,
나의 심장을 파고드는
나는 그 칼 끝을 손으로 잡고 미소짓는다.
얼음을 녹인다.
물이 되어 흐른다.
네가 보인다. 웃는다.

달빛이 흘러내린다.
나만의 달이 아이처럼 운다.
달의 눈꼬리가 붉다.
나 때문인가, 싶다.
그래서 그냥, 다가가 안았다.
물냄새와, 내가 좋아하는 달빛 향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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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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