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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준] 울어라, 캔디야


w.초록레몬


관계의 우연성



다른날과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날 법한 날이었다. 민석은 D-3 구역 인원의 부재로 제 구역이 아닌 곳에서 들어온 의뢰를 처리하러 가야했고, 철저히 계획되어진 삶을 사는데에 익숙한 민석은 조금의 불편함을 느낀 채로 연락받은 장소로 향했다. 유난히 달이 둥글었고, 본래 은빛을 띄던 달빛이 오늘따라 붉은 끼가 돌았다. 다들 홍월(紅月)이 불길하다 하지만, 차가운 은빛보다 뜨거운 붉은빛을 더 선호하는 민석이라 조금 전까지의 이질감이 왠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이제껏 몇 년간 설렘으로 다가올 만큼의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정말 오늘은 다른 사람이 된 것 마냥 몸 안에 집중되는 감각이 달랐다. 조금 더 뜨겁고, 울렁이는 느낌.


일은 특별히 위험하다거나 어렵지는 않았다. 그저 윗사람들의 지시에 맞게 기계적으로 빠르고 신속한 처리를 할 뿐이었다. 민석은 좁은 골목에 그 사람을 내몰고 소음기의 연결상태를 확인한 후 그대로 망설임 없이 남자를 향해 총을 쏘았다. 우유팩이 땅이 부딪히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한순간 나고, 남자가 쓰러졌다. 민석이 남자의 숨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들어 위치를 전송했다. 여느 때와 같이 소매를 털고 발사되지 않게 총을 분리해 가방에 넣은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자 민석의 시야 귀퉁이에 들어차는 조그만 인영이 보였다. 꽤 가까운 거리였고, 뒤이어 두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당황스러운 듯 하지만 차갑게 굳은 하나의 시선, 두려운 듯 하지만 호기심 가득한 하나의 시선. 자세히 보니 교복을 입고 가방을 맨 것이 아직 학생인 듯 했다. 책가방을 놓은 지 8년이 넘어갔고 이제는 발음조차 어색한 교복을 보니 괜히 민석의 마음이 이상해졌다. 저와 시선이 마주쳤음에도 도망가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모양새가 꽤나 당돌했다. 반짝거리는 순진한 눈빛이 마음에 들었다. 민석은 아이를 죽이지 않기로 마음먹고 본능적으로 가방 안에서 배회하던 손을 거뒀다. 


"아저씨."


민석은 자기를 부르는 말인가 싶어 고개를 그 쪽으로 향했다.


"나 이제 죽일거에요?"


완연히 소년의 빛깔을 띄는 미성이 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내뱉는데, 묘한 관심이 일었다. 민석이 본 모든 죽음은 처절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죽음을 눈으로 보고, 그 다음이 저일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렇게 일상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아니."


민석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정말로 아이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벌써 죽였을테니까.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목격자도 죽이던데."


아이가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민석은 그 말을 들었음에도 부러 대답하지 않았다. 안 죽일 거니까.


"그럼 잘가요."


아이가 손을 살랑살랑 흔들고는 책가방 끈을 쥐어잡고 뒤를 돌아 골목을 빠져나갔다. 민석은 멍하니 아이의 동그란 뒷모습을 바라봤다. 처음 만나보는 인간상에 마음 한켠이 이상스레 술렁거렸다. 이것도 며칠만 지나면 다 없어질테다. 하지만 이질적인 설렘의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아이와의 인연은 그렇게 가벼이 넘길 것이 아닌듯 했다. 민석은 제 책가방을 꽉 쥐고있던 아이의 손가락 마디마디와 동그랗게 뜬 반짝이는 눈동자를 차례로 떠올렸다. 호기심 가등했던 그 아이의 눈빛이 그 다음으로 떠올랐다. 마음에 든다, 아이가. 또 보고싶을 정도로.


그 생각을 하고 민석은 제 생각에 제가 놀라 파득, 거리며 뉘어져 있던 몸을 바로 했다. 이제 한동안은 의뢰가 없을 것이었기에 그동안은 암묵적 휴가기간이었다. 그 시간엔 대다수의 요원들이 여행을 가거나 나름대로의 여가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민석은 예외였다. 그는 이제껏 휴가가 주어진 이래로 제 집을 떠난 적이 없었으며, 그 누구의 놀러가자는 둥, 술 마시러 가자는 둥의 연락에 일체의 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 때문에 민석은 만인의 철벽남이 되어버린지 오래였다. 아무튼 민석은 내심 이번의 휴가를 알게 모르게 기대하는 듯 했다.


"이사를 간다고?"


"예."


"그것도 이런 판잣집으로?"


민석은 인상을 찌푸리고서 저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제 직속상사를 건조한 눈빛으로 응시했다. 남자의 눈썹이 순간 마음에 들지 않은다는 듯 움찔했다.


"이해할 수 없군. 자네라면 얼마든지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텐데."


"괜찮습니다. 거기면 됩니다."


민석은 제 앞의 상사가 얼른 결재를 해주었으면 했지만 뭐가 문제인건지 남자는 한참동안을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 거기 뭐라도 있는 건 아니겠지."


"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가 올린 서류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지."


남자가 제 턱을 한 번 슥 문질렀다. 심기가 불편하다는 표시였다.


"하지만 말이야, 민석군."


"예."


"사람들은 자신이 지켜야 할 것이 있을 때 가장 약해지지."


민석이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괜히 이 바닥에서 높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난 몇년 간, 이 조직에 오고부터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는 민석에 곱게 넘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거처를 옮긴다는 민석의 결재서류를 보고서는 더욱더.


"명심하겠습니다."


"이사를 하는 것에 결재는 해 주겠지만 이 집은 안 돼. 이쪽 세계 뿐 아니라 저쪽 구역에도 저들만의 조직이 있어. 괜히 부딪혔다가 안 좋은 일 생기느니 차라리 접점을 없애는 게 낫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길 건너 오피스텔로 옮기도록 하지. 짐은?"


"제가 옮기겠습니다."


"가구는 넣어둘 테니 작은 것만 챙겨."


"예."


"그래, 나가봐."


민석은 남자에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에서 나왔다. 조금 후 울리는 문자 소리에 폰을 보니 [1동 526호]라는 정확히 용건만을 보여주는 텍스트에 익숙하다는 듯 동호수를 기억하고 폰을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내일쯤, 들어가면 되겠지. 두어 달 정도는 있어야겠다. 생각하며.


민석은 큰 가구만 배치를 부탁하고, 나머지 짐은 하나하나 제 손으로 정리했다. 규칙적인 것, 깔끔한 것, 조용한 것, 심플한 것 등 틀에 짜 맞춘 것이 아니면 안된다는 강박까지 있는 민석은 제 손길이 닿아야지만 속이 풀렸다. 다만 한 가지. 음식만은 예외였다. 거의 네 다섯시간 넘게 걸려 정리를 마친 민석은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닫고 밥을 먹으러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사하고서 먹는 음식이 있었는데..기억의 저편을 더듬던 민석이 결국 자장면을 떠올리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장면. 안 먹은지 오래 됐다.


"어서오세요!"


딸랑이는 종소리와, 앞에 치렁치렁 달랑거리는 구슬달린 발을 젖히고 들어가자, 맑은 목소리가 손님을 반겼다. 민석은 그 목소리가 아이의 소리와 닮았다는 생각을 하며 픽 웃고는 제일 가까이에 있는 자리에 앉고서 주문을 했다. 자장면 한 개요.


"네- 자장면 한 개요!"


흠..다시 들어보니 더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민석은 창밖을 보며 테이블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우산에 굵게 떨어지는 빗소리 같았다. 복작복작한 작은 음식점 안에 내리는 굵은 빗소리. 답지 않게 민석은 '예쁜'소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에 더해 예쁜'것' 또한. 그리고 그 기준은 오롯이 주관적이었고. 민석은 모락모락 김을 퍼뜨리는, 반짝이는 짙은 고동색의 짜장면이 제 앞에 얹어질때까지 멍하니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고가는 사람들. 귓가에 들리는 말소리, 신발소리.


"자장면 한 그릇 나왔습니다...어? 그때 총 아저씨?"


"아..너."


민석이 멍한 얼굴로 아이를 바라봤다. 말갛고 깨끗한 이목구비가 한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더불어 고운 목소리까지.


"여기서 보네요. 신기하다...어, 혹시 이사했어요? 아까 이삿짐 차 왔다가 나가는거 봤는데. 총 아저씨 이삿짐 차였나봐요?"


동그랗게 뜬 눈으로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뱉어내는게 보기 좋고, 듣기도 좋았다. 흰 목에 찍힌 멍 같이보이는 붉고 푸른 자욱이 눈에 거슬렸지만 학생이니까, 친구랑 싸웠겠더니 넘겼다. 두번, 그것도 첫만남은 무려 제가 사람을 죽일 때 만났던 건데 어디서 다쳤어, 하면 입을 꾹 다물 게 선했다.


"네? 아저씨?"


"아, 응. 이사왔어."


"히히..우리동네 맞은편, 맞죠?"


"응. 그러네."


"뭐야, 싱겁게."


아이가 입술을 쭉 내어물었다. 귀엽네, 많이. 민석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어어, 총아저씨 웃었어."


아이가 그 모양을 보더니 제가 더 좋아 방싯거렸다. 초롬하게 단정한 얼굴이 사정없이 흩어지며 반짝거리는 듯 했다. 웃는것도, 귀엽네. 이쯤 되면 중증이라 생각하고 민석이 드디어 제 아래 놓인 자장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준면아! 주문 받아야지!"


"헉, 맞다. 가요!"


아이의 이름은 '준면'이었다. 이름마저 마음에 든다. 한번더 만나면 성까지 물어봐아지. 민석이 조금 불어버린 자장면을 그제야 먹기 시작했다. 왠지 자주 이 집에 자장면을 먹으러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WRITTEN BY
초록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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