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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필자의 커플링 취향과는 관계없음을 미리 밝힙니다

#오직 선물을 위해 쓴 글이며, 디 이외의 분들의 수정 원치 않습니다

#뀨






[백민]그 푸르렀던 날들



"하나 더!"


으윽..백현이 검지 손가락에서 빛무리를 뾰족하게 쏘아내며 제 앞의 고무인형을 관통시키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더는, 더는 못하겠다. 백현은 거친 숨을 뱉어내며 눈을 스륵 감았다. 18살, 인간의 몸의 강도와 똑같이 설계된 고무인형들을 하루에만 100개이상 부서뜨리고,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만들고, 또 그를 공격에서 보호하는 일들을 하기엔 어리다면 어릴나이. 기관에서 돌아다니는, 열살, 아니면 그보다 대여섯살 정도 많은 아이들을 본다면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 나이. 

보통 만 19세가 되고나서야 국가작전에 투입되는데 특별히 파괴력이 있거나 희소성이 있는 센티넬을 가지고 있는 센티넬의 경우 국가의 동의 하에 최소 15세부터 작전에 투입될 수 있었다. 백현은 빛, 리커버리, 이그노얼. 세 개의 센티넬을 가지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센티넬이었다. 그리고 이그노얼의 센티넬로 인해 필수 검사시기인 열여덟살이 되어서야 국가기관으로 끌려온, 선천적으로 제 센티넬을 다루는데 뛰어난 아이. 백현은 기관으로 들어오자마자부터 괴물이라고 불렸다.


-

"김민석!"


백현이 팔을 내저으며 저를 보고 걸어오는 민석의 이름을 불렀다. 눈꼬리를 접어가면서까지 활짝 웃으면서 팔을 휘휘 흔들며 저 부르는 모습에 민석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백현 앞에 섰다.


"뭐 먹지?"


민석이 주머니에 있는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백현에게 물었다. 원래도 몸이 차웠고, 그래서 조금만 추워져도 온 몸이 언 것처럼 차가워지는 민석은 어렸을적부터 온갖 감기란 감기는 달고 살았었다. 민석에게 가을로 접어듦에따라 온 몸에 붙이는 핫팩은 익숙한 것이었고, 거기다 외투 주머니엔 항상 커다란 핫팩이 하나씩 들어있었다. 그래야 그나마 감기가 약하게 드니까. 하지만 민석은 제 체질에 대해 뭐라 불만을  표한 적이 없었다. 백현이 투정부리듯 너 몸 차가워지는거 진짜 싫다- 했을 적에도 그저 괜찮은데.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니가 먹고 싶은거 먹자."


백현이 민석의 발끝을 지그시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몽글거리는 입김이 바람을 타고 흩어졌다.


"딱히 없는데."


민석이 그 한마디를 하곤 입을 닫았다. 하지만 이런 침묵이 어색하지 않을만큼 민석은 원래도 말이 한참 없었고,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탓에 몇년이상 알고지낸 사람이 아니면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주위에 항상 사람들이 차고넘친다는 건, 그만큼 매력이 있어서겠지. 말많고 사람을 좋아하지만 낯을 민석못지않게 가리는 백현은 항상 제가 다가가는 방식으로만 친구를 사귀었기에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매력을 가진 민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음, 그럼 떡볶이 먹자. 매운..건 니가 못먹네. 그러면 그냥 맛있는 떡볶이집으로!"


백현이 곰곰이 생각하다 떡볶이를 외쳤다. 민석이 옅게 웃으며 백현의 옆으로 걸었다. 백현이 말없이 민석을 바라보다 민석의 워머를 코까지 끌어올려줬다. 민석이 그런 백현을 빤히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꽤나 추운 겨울이었다.



-


"변백현. 진짜 가이딩 안 받아?"


"어."


"어? 어가 뭐냐 어가. 이래뵈도 선생님 소리 듣고 다니거든?"


"그게 왜."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너 가이딩 안 받을거야? 약은 내성생긴다."


"뭘. 1년밖에 안 됐는데."


"1년이면 길지! 작전하다 그냥 그대로 폭주해서 뒤지고싶냐?"


"...됐어. 죽으라면 죽지 뭐."


"하, 너 진짜."


"니 몸이나 간수 잘 해, 김종대."


"김종대애? 진짜 너 막나간다?"


"어쩌라고, 나 쉬게 약 놔주고 가. 힘들어."


"어이고. 그렇게 힘든 놈이 가이딩도 안받아, 훈련은 얼마나 또 무지막지하게 해. 한 번 폭주해야지 가이드 붙이겠다, 엉?"


쏟아지는 잔소리에 백현이 몸을 힘겹게 일으키고 종대 앞으로 제 얼굴을 훅 붙였다.


"시끄러. 나 폭주 안해. 알잖아?"


약이나 놔주고 가.


백현이 침대로 털썩 쓰러지며 말을 내뱉었다. SSS급 센티넬 변백현의 전담의사는 거의 팀의 규모로 이루어져 있었지만 10달 전, 제 방으로 들이닥치는 열댓명의, 펄럭이는 가운을 입은 의사들을 본 직후로, 다 필요없다고 한바탕 난리를 친 백현 덕에 기관에 처음 들어왔을 때 백현의 검사를 맡았던 종대가 전담의사로 마크되었다. 그나마 낯이 익은 종대가 편했으리라. 

종대는 순식간에 잠이 든 백현을 보곤 한숨을 쉬었다.


"내가 못 산다."


나도 네가 가이드 같은 거, 사실 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민석이 가이드라는 걸 알아차린건,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 즈음 제 센티넬을 자각하고 조금씩 다루는 데 신경을 쓰던 백현은 제게 이그노얼을 걸어두느라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도착해 민석을 보자마자, 시원해지고 온 몸의 근육이 하나하나 이완되는 느낌을 받았다. 아, 김민석. 가이드구나. 백현이 허탈하게 웃고는 제게 걸던 이그노얼을 민석에게로 옮겼다. 넌 평범하게 살아야해.


"변백현."


"응?"


"너 요새 고민있어?"


민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렇게 말 없는 김민석이 먼저 안부를 물었다는 건 그만큼 내가 초췌한건가. 하며 백현이 제 앞에 서있는 민석을 올려다봤다.


"으음? 아니. 그냐앙- 좀 피곤해서."


"뭘 하길래 그렇게 피곤해하냐. 하여간 일찍 자라니까."


말 안듣네. 그 말을 하고서 민석이 습관처럼 제 입술을 물었다. 백현이 민석의 생소한 모습을 보고 힘없이 웃었다. 낯은 가리지만 정이 많아 원래 한번 마음 준 상대에겐 티는 안내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민석의 성격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다른 사람에겐 일절 보이지 않는 모습을 제 앞에서만 보이니까. 자꾸 헷갈리게 한다. 김민석이. 언제가 될지도 모르는 그 날, 내가 너를 두고 떠나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니가 나를 그냥 담담히 보내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울고불고 안 된다며 나를 잡고 놔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뒤섞였다. 수업 종이 쳤고, 백현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엎드렸다.



-

백현은 오랜만에 꿈을 꾸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 백현은 익숙하게 몸을 씻고 머리를 털며 쇼파에 앉았다. 욕실에서 나올때부터 느껴졌던 이질적인 공기의 정체는 김종대였나. 옆으로 길게 놓인 쇼파 끄트머리에 앉아있던 종대가 쇼파에 앉는 백현을 보고 웃으며 반겼다.


"또 왜. 그리고 내가 불쑥불쑥 찾아오지 말랬잖아."


"변백현아."


"또 가이드 붙이란 소리 하면 너죽고 나 죽는거야."


백현이 살벌한 눈을 하고서 손끝으로 빛무리를 만들어냈다. 미친. 저거 맞으면 죽는다. 종대가 침을 꿀꺽 삼켰다. 일단 보류다.


"아, 아니야아- 오늘 훈련일정하고 보여주려구 왔지."


"매일 똑같은데 뭘 보여줘. 곧 간다고 전해."


"...그래."


종대가 서류철을 들고 일어나고, 백현은 일어나 옷장문을 열었다.


"이젠 좀 형이라고라도 불러라!"


쾅.

문이 거세게 닫히고, 종대가 쌩하니 뛰어갔다. 백현은 종대의 마지막 말에 피식 웃으며 와이셔츠 단추를 잠그기 시작했다. 


"뭐, 형 같아야 형이라고 부르든가 하지."


넥타이까지 말끔히 맨 백현이 구두를 신고 문 밖을 나섰다. 처음엔 아침식사가 일정에 잡혀있길래 뭐지 하며 잠옷차림 그대로 갔다가 모두의 경악을 가득담은 시선을 받아야 했었다. 그 많은 시선들이란. 다시 한 번 그날의 풍경을 곱씹은 백현은 으, 하며 고개를 털었다. 생각만 해도 입맛이 뚝 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정장을 갖춰 입고서 밥을 먹으러 가는 이 순간도 가감없이 말하자면 역겨웠다. 하지만, 그래도 참을 수 있는 이유는.


-

민석이었다.

체육시간이었나,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을 온 몸으로 받고있는 민석을 멍하니 바라보는 백현의 모습이 익숙했던 그 낯익은 운동장에서의 시간은. 늦봄의 햇살은 이제 여름의 그것과 비슷해져 갔고 그에 따라 백현의 마음도, 민석의 마음도 온도를 찾아갔다.


"김민석! 축구 안 해?"


민석은 백현의 목소리에 단상 위에 앉아 고개를 살래살래 내저었다. 어릴 적 부터 축구를 좋아했던 민석을 따라 함께 축구를 해온 지 햇수로 거의 8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요 근래에 자주 피곤함을 호소하며 제가 그리도 좋아하던 축구도 마다하고 단상 위에 앉아 다리를 데롱거리는 민석을 보니 백현이 괜히 착잡했다. 분명 무의식적으로 가이딩을 제게 펼쳐 그런 것이리라. 물론 민석에게 열심히 이그노얼을 걸고 있는 저 자신도 힘들었지만, 조절이 안 되는 가이딩은 그 자체만으로 온 몸의 힘을 쫙쫙 빨아간다. 민석아, 넌 평범하게 살아줘.


-

"새로 들어 온 가이드가 있어."


"가이딩, 안, 받을, 거라고."


아침 식사 후 몇 시간 동안의 사격훈련을 마치고 잠시 쉬고있던 백현에게로 종대가 와 말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심각한 느낌을 받은 백현은 받쳐 오르는 불안감을 억누르려 애쓰며 부러 음절을 끊어 발음했다.


"변백현."


"...썅."


"트리플 S급 센티넬에 가장 적합한 가이드가 어떤 가이든줄 알아?"


"...더블S에 트리플A급."


"잘 아네."


"김종대. 아니지?"


"김민석, 왔다."


백현의 세상이 부서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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