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작과 끝은 너였어.


 


 



너는 반짝거리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너의 뽀얗고 조그마한 손 안에 들어올 만큼 작고, 깊고 올망이는 너의 눈동자처럼 반짝이는 것들.

그런 네가 왜 나를 좋아해주었는지, 왜 날 보며 반짝거린다 감탄했는지, 나는 영원히 모를 일이다.

별이 촘촘히도 박힌 밤하늘을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네가 보고싶다.


--


"안녕하세요."


"네?"


"혹시 시간 있으세요?"


"....저..."


웬 미친놈이었다. 다짜고짜 지하철 계단을 급히 올라가고 있던 내 팔을 덥썩 잡더니 시간이 있냐고 묻던 사람. 

나도 큰 편은 아니지만 나보다 조금 작은듯한 키에 체구도 왜소했고, 무엇보다 품이 약간 큰 교복도 내가 그 사람을 귀찮게 여기는 것에 한몫했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모질지 못했다. 내가 바쁘면 바빠서 안된다고, 싫으면 싫다고 딱 잘라 말하지 못했고, 그로 인해 인생이 여러번 꼬이기도 했었다. 무엇보다 낯가림도 심했다. 그리고, 회사 출근시간을 5분남짓 남겨둔 이 급박한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래도 그 미친놈은 눈치는 빨랐는지, 아니면 나의 안절부절 못하는 표정이 굉장히 여실히 드러났는지, 친절하게도 무슨 일 있냐고 먼저 물어주었다.


"회사, 좀 늦을 것 같아서요."


"아, 그럼.."


그 사람은 내게 직사각형으로 생긴 무언가를 손에 꼭 쥐여주고는 말했다.


"학교끝나면, 전화할게요."


정말 이상한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7시쯤 전화가 왔다. 혹시 휴대폰이 꺼질까 내 폰을 충전하고 나서 친절하게 그 아이의 휴대폰도 100퍼센트 만땅으로 채워주는 호의까지 보였다. 평범하지 않았던 일상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까. 그날의 나는 하루종일 조금 들떠 있었다.


"여보세요."


"우리 만날까요?"


다짜고짜 만남을 권하는 질문아닌 질문에 나는 또 당황을 해버리고, 일단 휴대폰을 돌려줘야했기에 퇴근시간에 맞춰 만나기로 결정을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가 해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예뻤다. 웃으면 시원하게 벌어지는 입과 그 아래 약간 도드라진 앞니가 귀여웠다. 미소에서도 웃음소리가 들릴 것 같은 느낌에 나는 머리를 두어 번 털고 자리에 앉았다.


"아저씨."


"응?"


"나랑 연락해요."


"뭐..?"


멍했다. 대체 이 아이가 뭐라고 하는건지 감도 잘 오지 않았다. 뭐지? 뭐지? 하다가 그냥 순수한 의도일거라 생각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던 것 같다.


"무슨뜻인지 알고 그렇다고 한거에요?"


"응?"


"제 이름은 김민석이에요. 청주고등하교 3학년. 스물 한 살. 2년 휴학했었어요. 제가 아저씨랑 알고 지내고 싶은 이유는,"


아저씨가 이제까지 제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반짝거려서에요.


그 말을 하며 환히 웃는 네 모습에, 내가 반했던 것 같기도 하다.


-

그 이후로 몇 번 연락을 주고 받고, 만나기도 하면서 내 감정이 커져갔다. 음, 정정하자면 서로의 감정이 커져갔다고 하는게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어두침침하고 단절되어있던 내 세상이 아이로인해 밝아지고 있음을 느꼈고, 알고 지낸지 세달 만에, 아이의 고백을 들었다.


"아저씨가 좋아요."


"민석아?"


"외롭지 않아요. 그리고 외롭지 않을 거에요."


민석이가 평소처럼 환하게 웃었다.


"아저씨가 있으니까."


-


민석이의 상처투성이 팔을 보게 된 건 그 해 여름이었다. 하복은 입었는데 그 위에 바람막이를 입고 있어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벗어보라는 내 말에 당황해하는 아이를 보고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억지로는 아니었지만 한 번 벗어보라는 내 말에 망설이다 조용히 벗은 뽀얀 두 팔은 온통 정체모를 상처로 가득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조금씩 떠는 아이를 끌어안아 토닥였다. 미안해, 미안해.


"아저씨."


"응,"


"좋아해요."


"응, 나도 민석아."


"끝까지 있어줘요."


"그래."


그날, 네게 끝을 약속했다.


-


"나, 죽을거에요."


꿈꾸듯 말하는 너의 모습에 잠시 빠져들었었지만, 그 내용만은 아니었다. 두 눈이 번쩍 떠질만큼의 큰 충격이었다.


"뭐? 너..!"


"약속했잖아요. 끝까지 있어주기로."


그쵸? 하며 너는 예의 그 해사한 미소를 지었다.


"죽는다는 말, 쉽게 하는 거 아니야."


덜덜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식상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이가 푸슬푸슬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찾아와줘요. 말도 걸어주고."


"지금도, 지금도 할 수 있잖아."


나는 필사적이었다. 아이가 정말 가버릴 것 같아서.


"난 병아리가 좋아요."


"민석아."


"그치만 병아리는 날지못해서-"


"..."


"추락하죠."


"...민석아."


"나랑 방금 끝까지 있어준 거에요."


"김민석."


"안녕, 변백현."


잠시 그 아이의 입에서 굴려지는, 각이 져 딱딱하기 그지 없는 내 이름이 너무 벅차서, 울 뻔 했다.
아이는 결심을 한 것 같았다.
'결심' 이라는 말을 할 만큼 단순한 이야깃거리는 아닌 것 같았지만, 아무튼,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아이는 그렇게 웃으며 내 품에서 날아갔다.

 

 

병아리는 날았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하늘로 멀리멀리 날아갔으니까.


아이는 내가 의지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던 걸까.
왜 그렇게 쉽게 나를 놓아버린걸까.
몇날 몇일을 울며 지냈다.
처음 병가를 내고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폐인처럼 주저앉아 울고 자고를 반복했다.
아이가 너무 보고싶었다.


그래서, 아이의 마지막 말처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민석아, 안녕.
마중나와 있어 줄래?


날아라, 내 병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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